지난 며칠 우리는 쓰지 않는 땅, 쓰지 않는 하늘, 그리고 길이 잠근 땅을 차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자산화의 시선을 조금만 더 아래로 내리면,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면서도 값으로 세어 본 적이 거의 없는 자산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땅속, 즉 지하공간(地下空間)입니다. 부동산 현장에서 땅값은 오랫동안 지표(地表)의 값과 동의어였습니다. 그러나 20년간의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하나의 필지는 지표만이 아니라 그 위의 공중(空中)과 그 아래의 지하라는 세 겹의 값을 품고 있습니다. 공중권을 팔 수 있다면, 땅속도 팔 수 있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단순합니다 — 아무도 세지 않는 땅속은 정말 값이 없는가.
지하공간은 '빈 공간'이 아니라 '값이 매겨지지 않은 층위'다
논의의 출발점은 토지 소유권이 미치는 범위를 다시 보는 데 있습니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간과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 민법상 토지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에서 토지의 상하(上下)에 미칩니다(민법 제212조, L1). 즉 소유권은 지표에서 멈추지 않고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속으로 이어지되, '정당한 이익'이라는 한계 안에서만 배타적 지배가 인정됩니다.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지하가 소유권의 사각지대여서가 아니라, 지하를 별도의 값으로 떼어내 거래할 제도적 문법이 늦게 정비되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 문법의 핵심 장치가 구분지상권(區分地上權)입니다. 민법 제289조의2는 지하 또는 지상의 공간을 상하의 범위를 정하여 건물 기타 공작물을 소유하기 위한 지상권의 목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L1). 지하철·지하 전력구·공동구·상하수도가 남의 땅 밑을 지날 때 설정하는 바로 그 권리입니다. 여기에 한계심도(限界深度)라는 실무 개념이 겹칩니다. 통상 고층 시가지는 지하 40m를 한계심도로 보아, 이보다 깊은 대심도(大深度) 부분을 사용할 경우 토지 이용에 미치는 지장이 미미하다고 보고 보상 적용률을 0.2% 이하로 낮게 책정합니다(L2). GTX가 지하 40m 이하를 관통하면서 구분지상권을 설정하고 심도에 따라 차등 보상해 온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L2, 보도·국토부 자료). 즉 지하는 이미 값이 매겨지고, 권리가 설정되고, 보상이 오가는 현실의 자산 층위입니다 — 다만 그 값을 선제적 투자 대상으로 계량하는 관점이 드물었을 뿐입니다.
글로벌 사례 — 세 도시가 땅속을 도시 자산으로 세운 법
제도적 프레임워크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지하공간의 자산화는 한국만의 상상이 아니라 이미 여러 성숙 도시가 수십 년에 걸쳐 제도와 계획으로 구현해 온 현실입니다. 세 도시의 해법을 비교하면 우리의 좌표가 선명해집니다.
① 캐나다 몬트리올 — 지하도시(RÉSO). 몬트리올 도심 지하에는 약 32km(일부 자료 33km)의 보행 통로망이 12㎢에 걸쳐 뻗어 있으며, 60개 이상의 건물과 10개 지하철역·2개 버스터미널을 연결해 하루 약 50만 명이 오갑니다(L2). 연결된 복합시설의 연면적만 약 3.6㎢에 이릅니다. 혹한의 기후를 날씨와 무관한 지하 동선으로 뒤집어, 지하 접속성이 곧 상층부 상업가치로 자본화된 대표 사례입니다.
② 핀란드 헬싱키 — 세계 최초의 지하 마스터플랜. 헬싱키 시의회는 2010년 12월 8일 도시 전역을 대상으로 한 지하 마스터플랜(Underground Master Plan)을 승인했습니다(L2). 이는 도시 단위로 지하 공간을 계획 대상에 편입한 세계 최초 사례로 평가되며, 수백 개의 지하 시설(수영장·데이터센터·주차·비축·유틸리티 터널)을 견고한 화강암 지반 위에 조율합니다. 지하를 '개별 굴착'이 아니라 도시계획의 정식 레이어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제도적 전환점입니다.
③ 싱가포르 — 지하 마스터플랜(2019)과 지하 비축. 국토가 좁은 싱가포르는 2019년 지하 마스터플랜을 통해 3개 시범 구역(마리나베이·주롱 혁신지구 등)의 3차원 지하 지도를 만들고, 데이터센터·유틸리티·물류·저수조 등을 지하로 내려 지상을 주거·녹지·업무로 비우는 전략을 공식화했습니다(L2). 이미 주롱 암반 비축기지(Jurong Rock Caverns)와 마리나베이 지역냉방(district cooling) — 냉수를 순환시켜 건물 에너지 사용을 약 40% 절감 — 을 운영 중입니다(L2). 지하를 토지 공급의 새로운 개척지로 규정한 것입니다.
세 도시의 공통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성숙한 도시일수록 지하를 버려진 여백이 아니라 계획·거래·자본화가 가능한 자산 층위로 다루며, '지하를 도시계획의 정식 레이어로 승격시키는 장치'를 반드시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 적용 — 우리 손에 이미 쥐어진 도구들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 역시 지하를 다룰 법적·데이터 도구를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도구의 부재가 아니라 도구를 자산 전략으로 엮어내는 설계의 부재입니다. 서울 코엑스몰·강남·명동의 지하도상가, 공동구와 지하 전력구, GTX·도시철도의 대심도 노선은 모두 지하공간 활용의 축적된 실무입니다(L2). 최근에는 국토교통부가 2025년 대심도 지하 사용 시 구분지상권 적용과 보상 체계 전반을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대심도의 권리·보상 문법이 다시 정비될 국면입니다(L2, 보도). 지하를 다루는 국내 실무 경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경로 | 근거 | 성격 | 자산화 관점의 강·약점 |
|---|---|---|---|
| 구분지상권 설정 | 민법 §289조의2 | 등기 물권(상하 범위 특정) | 지하를 지표와 분리해 거래·담보 가능 — 심도·범위 특정이 관건 |
| 대심도 사용(한계심도 이하) | 토지보상 실무·심도별 요율 | 보상 저율(0.2% 이하) | 보상 부담 작아 선형 인프라에 유리 — 제도 재정비 진행 중(L2) |
| 지하연결통로·지하도상가 | 도시·군계획시설, 지하공공보도 | 공공·민간 결합 | 상층부 접속성 상승 — 인허가·유지관리 협의 필요 |
| 지하 용도전환(주차·저장·데이터) | 건축·용도 관련 법령 | 기능 재배치 | 지상 여백 확보·수익원 다변화 — 지반·환기·안전 공법 비용 |
여기에 데이터가 결합되면 판단은 훨씬 정교해집니다. 브이월드(V-World) 공간정보와 국토정보플랫폼으로 지형·지반·지하시설 도면을, 토지이음(eum.go.kr)으로 용도지역·지구단위계획을, 등기부로 구분지상권 설정 현황을, 통계청 SGIS로 반경 유동·실수요를 조인하면, 특정 필지의 지하가 어느 심도까지, 어떤 용도로, 얼마의 잠재가치를 품고 있는가를 정량적으로 스크리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하를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로 다루는 방식입니다.
용유미 CSO의 K-USV Index — 지하공간 자산화 5단계
장기적 자산가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지하공간 투자는 '땅을 사서 위로 올리는 일'의 반대편, 즉 땅을 아래로 확장해 값을 여는 일입니다. 지난 자산화 지수들과 같은 문법으로, 지하를 계량하는 K-USV(Underground Space Value) Index 5단계를 제안합니다.
| 단계 | 점검 축 | 핵심 질문 | 데이터·근거 |
|---|---|---|---|
| 1단계 | 권원·심도 | 구분지상권으로 어느 상하 범위를 특정·확보할 수 있는가(한계심도 40m 기준) | 민법 §289조의2, 등기부, 심도별 보상 요율 |
| 2단계 | 지반·공법 | 암반·토사 조건과 굴착·차수 공법 여력이 사업성을 지탱하는가 | 지반도(국토정보플랫폼), 지질·시추 자료 |
| 3단계 | 접속·연결 | 지하철·지하도·지하보행망과 연결돼 상층부 접속가치가 오르는가 | 도시철도 노선, 지하공공보도, 브이월드 |
| 4단계 | 용도·수요 | 지하 적합 용도(주차·물류·데이터센터·비축·상업)의 실수요가 반경 내 있는가 | 토지이음(용도·지구), 통계청 SGIS, 상권정보 |
| 5단계 | 사업·제도 | 대심도 보상·인허가·안전 규제 구조가 사업을 성립시키는가 | 토지보상 실무, 대심도 제도 개정 동향(L2) |
다섯 축을 결합하면 프롭테크 상품 하나가 즉시 도출됩니다. 지형·지반·지하시설 도면에서 미활용 지하 여력을 판별하고, 구분지상권 설정 현황과 한계심도로 확보 가능한 상하 범위를 점수화한 뒤, 토지이음의 용도·지구단위계획과 통계청 SGIS의 반경 실수요를 얹으면, '이 필지의 땅속이 어느 심도까지, 무엇으로, 얼마의 값으로 되살아나는가'를 지도 위에서 보여 주는 스크리닝 엔진이 됩니다. 타깃 사용자는 셋입니다 — 지상 개발이 한계에 다다른 도심 자산의 소유자, 데이터센터·물류·비축의 지하 입지를 찾는 시행사·리츠, 그리고 지하 인프라와 지하도시를 계획하는 지자체. 기존 매물 서비스와의 차별점은 명확합니다. '이 땅 위에 무엇을 지을까'가 아니라 '이 땅 아래에 잠긴 층위를 어떻게 여는가'를 먼저 답한다는 것입니다.
용유미 CSO 인사이트 — 지하의 값을 여는 다섯 가지 점검
① 필지는 세 겹의 값이다: 지표·공중·지하는 각각 별도의 값을 가진다. 공중권을 거래한다면 지하도 거래할 수 있다 — 문제는 '빈가'가 아니라 '아직 값을 안 세었다'다.
② 구분지상권이 지하를 자산으로 만든다: 상하 범위를 특정해 등기하는 순간, 지하는 지표와 분리되어 거래·담보·개발의 대상이 된다. 범위 특정이 곧 가치의 시작이다.
③ 한계심도 40m가 비용의 임계선이다: 40m 이하 대심도는 보상 요율이 0.2% 이하로 낮아 선형·비축 인프라에 유리하다. 다만 대심도 제도는 재정비 국면이므로 관할·개정 동향을 함께 봐야 한다(L2).
④ 세계는 지하를 도시계획의 레이어로 승격시켰다: 몬트리올 지하도시, 헬싱키 지하 마스터플랜, 싱가포르 지하개발 모두 지하를 '여백'이 아니라 '계획·자본화 대상'으로 세웠다. 우리 손에도 구분지상권·대심도·공동구라는 같은 도구가 있다.
⑤ 판정 데이터를 먼저 쥐는 쪽이 앞선다: 지반·심도·접속·용도·수요를 조인해 지하 여력을 계량하는 도구를 먼저 만드는 쪽이, 지상이 포화된 도심 시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다(투자권유 아님).
핵심은 하나입니다. 이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 지하는 값이 없는 여백이 아니라, 아직 값을 세지 않은 세 번째 층위일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은 시장·정책 관점의 독자 분석이며 투자권유·수익보장이 아닙니다. 구분지상권·대심도 보상·지하 개발 판단은 개별 필지의 지반·권리·규제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관련 법령과 토목·법률·감정평가 전문가 확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번 자산화 시리즈는 하나로 이어집니다. K-IDL(유휴부지의 자산화)이 '쓰지 않는 땅'을, K-ADR(공중권의 자산화)이 '쓰지 않는 하늘'을, K-LLA(맹지의 자산화)가 '길이 잠근 값'을 계량했다면, 오늘 K-USV는 '아무도 세지 않은 땅속'을 계량합니다. 여러 지수가 향하는 곳은 하나입니다 — 공간에서 비거나 잠기거나 아직 값을 세지 않은 층위를 찾아 값을 여는 일입니다. 관련하여 용유미 CSO의 공간·자산 전략 자문에서 더 깊은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대한민국 민법 제212조(토지소유권의 범위)·제289조의2(구분지상권).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 — 토지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 범위에서 상하에 미치며, 지하·지상 공간을 상하 범위를 정해 지상권의 목적으로 할 수 있음(L1).
대심도 지하 사용과 구분지상권·보상 실무 — 고층 시가지 한계심도 40m, 대심도(40m 이하) 사용 시 보상 적용률 0.2% 이하, GTX 대심도 구분지상권 설정·심도별 차등 보상. 국토교통부 자료 및 전문지 보도(아시아경제·머니투데이방송 등), 2025년 대심도 구분지상권·보상 체계 재검토 추진(L2).
Ville de Montréal / Tourisme Montréal — 지하도시 RÉSO 약 32km(일부 33km) 보행망, 60개 이상 건물·10개 지하철역 연결, 일 약 50만 명 이용, 연결 연면적 약 3.6㎢(L2).
City of Helsinki (2010). Underground Master Plan of Helsinki — 2010년 12월 8일 시의회 승인, 도시 단위 지하 마스터플랜의 세계 최초 사례로 평가(L2).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Singapore (2019). Underground Master Plan — 3개 시범 구역 3차원 지하 지도, 주롱 암반 비축기지, 마리나베이 지역냉방 에너지 약 40% 절감(L2).
브이월드(V-World)·국토정보플랫폼(지형·지반·지하시설 도면)·토지이음(eum.go.kr)·등기부·통계청 SGIS 인구격자 — K-USV Index 산출 데이터 원천.
용유미 (2026). K-IDL(유휴부지 자산화)·K-ADR(공중권 자산화)·K-LLA(맹지 자산화). yongyumee.com.
※ 인용 수치·법조문(한계심도 40m·보상 0.2%, 몬트리올·헬싱키·싱가포르 지하 계획 세부, 대심도 제도 개정)은 관할·연도·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발행일(2026. 07. 22) 기준입니다. L2로 표기한 항목(해외 도시 계획 세부, 국내 대심도 보상·제도 동향)은 1차 자료로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실제 지하 개발·보상 판단은 관할 지자체와 토목·법률·감정평가 전문가 확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