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사무실을 너무 많이 지었고, 집은 여전히 모자랍니다. 이 두 불균형은 오랫동안 별개의 문제로 다뤄졌지만, 지금 세계의 여러 도시는 하나의 처방으로 묶어 내고 있습니다. '비어 가는 사무실을 헐지 않고 집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2025년 오피스를 개조한 아파트는 파이프라인 기준 7만700채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2만3,100채의 세 배, 전년 대비 28% 증가입니다(RentCafe·Yardi Matrix, 2025·L2). 오늘은 이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을 부동산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새로 짓는 대신, 이미 서 있는 구조체를 다른 용도의 자산으로 다시 읽는 발상입니다.
빈 사무실의 두 번째 인생 — 오피스 주거 전환의 문법, K-ARC 인덱스 (용유미 CSO)
이론적 배경 — '철거'가 아니라 '재사용'이라는 발상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은 건물의 구조체(뼈대)를 유지한 채 용도만 바꾸는 도시재생 기법입니다. 신축이 아니라 재사용을 택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골조가 이미 서 있으면 인허가·시공 기간이 신축 대비 크게 단축됩니다. 둘째는 탄소입니다. 건물 생애주기 배출량의 상당 부분은 이미 투입된 자재에 잠긴 내재탄소(embodied carbon)인데, 구조체를 살리면 이 매몰 탄소를 다시 쓰는 셈이 됩니다. 제가 내재탄소·LCA 분석에서 짚었던 논리 —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은 이미 지어진 건물'—이 여기서 그대로 작동합니다. 셋째는 입지입니다. 오피스는 대개 교통·인프라가 완비된 도심에 있어, 주거로 전환되는 순간 직주근접이라는 희소가치를 획득합니다. 요컨대 오피스 전환은 '남는 것(공실)'과 '모자란 것(주거)'을 도심 한복판에서 맞바꾸는 교환입니다.
글로벌 신호 — 전환을 정책과 자본으로 밀어 올린 시장
① 미국 — 4년 만에 파이프라인 급팽창
미국은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남긴 도심 공실을 주거로 되돌리는 흐름이 가장 뚜렷합니다. 오피스→아파트 전환은 2025년 7만700채로 사상 최대에 이르렀고, 전체 적응적 재사용 아파트(약 16만9,000채)의 42%를 차지했습니다. 권역별로는 뉴욕 대도시권이 8,310채로 선두, 워싱턴 D.C.가 6,533채, 로스앤젤레스가 4,388채로 뒤를 이었고, 시카고가 맨해튼을 제치고 전환 1위 도시로 올라선 해이기도 합니다(RentCafe·Yardi Matrix, 2025·L2). 주목할 점은 규모보다 속도입니다. 불과 4년 만에 파이프라인이 세 배로 늘었다는 사실은, 전환이 일부 랜드마크의 예외가 아니라 표준 전략으로 자리 잡았음을 뜻합니다.
② 캐나다 캘거리 — 도시가 ㎡당 돈을 거는 방식
캘거리는 지방정부가 전환을 직접 보조한 대표 사례입니다. 도심 오피스 전환 사업에 ㎡당 최대 75달러(건당 상한 1,5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인센티브를 운영해, 21개 사업에서 총 268만 제곱피트의 오피스를 2,667채의 주택과 호텔·호스텔로 전환하고 있습니다(City of Calgary, 2024~2026·L1).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오피스 전환은 시장에만 맡기면 층고·설비·채광 같은 물리적 제약 때문에 사업성이 흔들리기 쉬운데, 캘거리는 '공실이 도심 세수와 활력을 갉아먹는 비용'을 인정하고 그 비용을 보조금으로 앞당겨 지불했습니다. 전환은 부동산 사업인 동시에 도시재정 전략이라는 관점입니다.
③ 공통 교훈 — '되는 건물'과 '안 되는 건물'의 구분
성숙 시장들이 공통으로 확인한 사실은, 모든 오피스가 주거로 전환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면이 얕아 채광·환기가 유리한 구(舊) 오피스는 전환에 적합한 반면, 대형 판상형 신축 오피스는 내부 깊숙한 공간에 창을 낼 수 없어 전환이 어렵습니다. 즉 전환의 성패는 '얼마나 비었는가'가 아니라 '구조가 집이 될 수 있는가'에서 갈립니다. 공실률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전환의 경쟁 우위는 '새 땅을 사는 자본'이 아니라 '낡은 구조를 다시 읽는 눈'에 있습니다. 시장이 '노후·공실'로 낙인찍은 건물이, 얕은 평면과 도심 입지라는 조건만 맞으면 오히려 주거 전환의 원가 우위가 됩니다. 경쟁은 매입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 진단과 인허가 설계의 정밀함에서 갈립니다.
국내 적용 — 아직은 낮은 공실, 그러나 다가오는 공급 파도
한국, 특히 서울은 지금 당장은 오피스가 남아돌지 않습니다. 2025년 1분기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3.8%로 자연공실률 5%를 밑돌고, 광화문 CBD는 2.6%에 불과합니다(Colliers, 2025·L2). 그러나 구조적 변화가 예고돼 있습니다. 2025~2031년 서울에 약 760만㎡(230만 평)의 오피스가 공급될 예정이고, 이 중 CBD에만 297만㎡가 몰립니다. 대형 신축이 집중되는 권역은 공실률이 일시적으로 두 자릿수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한국경제, 2025·L2). 신축이 임차인을 흡수하면, 상대적으로 낡은 오피스와 노후 오피스텔은 '기능 전환' 압력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정책·업계 모두 노후 오피스텔의 리모델링과 기능 전환을 통한 주거 자산 재편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냉정한 반증(反證)도 함께 봐야 합니다. 국내에서 오피스의 주거 전환은 건축법상 용도변경·주차 대수·일조 및 채광 기준·소방 규정에서 개별 검토가 필요하고, 판상형 대형 오피스는 평면 깊이 때문에 물리적으로 전환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공실이 늘 것이다'와 '이 건물이 집으로 바뀌어 수익이 난다'는 전혀 다른 명제입니다. 전환은 규제·구조·자금이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만 성립합니다.
용유미 CSO 인사이트 — K-ARC Index 5단계 설계
그래서 필요한 것은 '어떤 노후 오피스가 주거로 성립하는가'를 정렬하는 격자입니다. 저는 이를 K-ARC(Korea Adaptive Reuse Conversion Index)로 제안합니다. 새 건물을 짓기 전에, 이미 서 있는 오피스가 주거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5개 축으로 점검하는 순서입니다.
| 단계 | 축 | 핵심 질문 · 판정 지표 |
|---|---|---|
| A1 | 구조 적합성 | 평면 깊이·층고·창 배치가 주거로 재분할 가능한가 — 얕은 평면일수록 유리 |
| A2 | 입지 가치 | 도심·역세권 직주근접 프리미엄이 전환 원가를 상쇄하는가 |
| A3 | 공급 압력 | 인근 신축 공급으로 해당 오피스의 임차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가 |
| A4 | 권리·규제 | 용도변경·주차·일조·소방 기준 충족 가능성 — 전문가 확인 필수 |
| A5 | 사업 주체·자금 | 전환 공사비·금융을 감당할 시행 주체와 (있다면) 공적 인센티브 존재 여부 |
이 격자의 발상 전환은 명확합니다. 부동산 투자는 보통 '좋은 자리를 비싸게 사서 좋은 임차인을 들이는' 게임인데, 전환 자산은 '기능을 잃어 가는 구조를 싸게 확보해 용도를 바꿔 새 수요에 붙이는' 게임입니다. A1(구조 적합성)이 받쳐 주고 A2(입지 가치)가 우위이면, A3(공급 압력)가 커질수록 전환의 상대 매력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반대로 A1이 막힌 대형 판상형이라면, 아무리 공실이 늘어도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K-ARC는 '전환할 이유'가 아니라 '전환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먼저 세는 지수입니다.
본 칼럼은 부동산 시장·해외 사례에 대한 교육적 분석이며, 특정 물건·상품·지역에 대한 투자 권유나 수익 보장이 아닙니다. 인용 수치는 발표 기관·기준일과 함께 표기했으며 추정·통념은 L태그(L1 공개 1차 / L2 보도·통념)로 구분했습니다. 오피스의 주거 전환은 건축·소방·세무상 개별 검토가 필요하며, 실제 의사결정은 반드시 관련 전문가의 확인을 거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RentCafe / Yardi Matrix (2025). Adaptive Reuse Report — Office-to-Apartment Conversions Hit Record High. 미국 오피스→아파트 전환 파이프라인 7만700채(2025)·전체 적응적 재사용의 42%·뉴욕 8,310채·워싱턴 6,533채·LA 4,388채. (L2)
2. City of Calgary (2024~2026). Downtown Office Conversion Program (formerly Downtown Development Incentive Program). ㎡당 최대 75달러·건당 상한 1,500만 달러·21개 사업 268만 sqft → 2,667채. (L1)
3. Colliers (2025). 2025 Q1 서울 오피스 시장 보고서. 서울 오피스 공실률 3.8%·광화문 CBD 2.6%. (L2)
4. 한국경제 (2025). 2031년까지 서울 중심권역 오피스 공실률 증가 전망. 2025~2031년 서울 오피스 공급 약 760만㎡·CBD 297만㎡. (L2)
5. Planetizen / REJournals (2025). Over 71K Office-to-Apartment Units in the Pipeline for 2025. 2022년 2만3,100채 대비 3배·전년비 +28%. (L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