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데이터센터가 버리는 열을 도시의 난방으로 되돌리는 폐열 재활용을 다뤘습니다. 그 논의가 '건물이 운영 중에 내뿜는 에너지'에 관한 것이었다면, 오늘은 한 걸음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로 건물을 '짓는 순간'에 이미 대기 중으로 빠져나간 탄소, 곧 내재탄소(embodied carbon, 자재 생산·운송·시공·해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입니다. 20년간의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보면, 건물의 탄소발자국은 준공 후 수십 년의 전기·가스 사용량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콘크리트를 붓고 철근을 올리는 그 순간, 자산의 탄소 회계는 이미 절반 이상이 확정됩니다. 운영탄소는 줄여나갈 수 있지만, 내재탄소는 '되돌릴 수 없는 선불(先拂)'입니다.
1. 도입 — 왜 '짓는 순간의 탄소'가 자산 전략의 변수인가
제도적 프레임워크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그동안 건물의 탄소 규제는 거의 전적으로 운영에너지, 즉 냉난방·조명·환기에 쓰는 전기와 가스에 집중돼 왔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에너지효율등급,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이 모두 그 운영단계의 탄소를 겨냥합니다. 그러나 건물이 점점 더 에너지효율적으로 지어질수록, 전체 생애주기 탄소에서 운영단계의 비중은 줄고 자재·시공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커집니다. 영국 런던플랜 자료는 신축 건물에서 이미 '지어진 채로 박혀 있는' 내재 배출이 전체 전과정 탄소의 약 40~70%를 차지한다고 봅니다(L2, 보도·GLA). 본 칼럼이 다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건물의 탄소를 운영단계에서만 관리할 것인가, 짓는 순간의 내재탄소까지 자산의 가치 변수로 읽을 것인가, 그리고 그 판단을 어떻게 부지·건물 데이터로 번역할 것인가.'
내재탄소 비중(런던플랜)
단독주택 내재탄소 상한(㎡당 CO2e)
ZEB 5등급 의무화(예정)
건설·해체 단계 비중
2. 이론적 배경 — 내재탄소·탄소선불·좌초자산
본질적으로 내재탄소 논의는 '탄소를 언제 회계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운영탄소(operational carbon)는 건물이 사용되는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배출되지만, 내재탄소는 자재 생산과 시공이 끝나는 시점에 한꺼번에 대기 중으로 빠져나갑니다. 이를 '탄소 선불' 또는 '업프런트 탄소(upfront carbon)'라 부르며, 한번 배출되면 운영 효율을 아무리 높여도 회수할 수 없습니다. 전과정 탄소를 측정하는 도구가 전과정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이고, 개별 자재의 환경부하를 표준화해 비교 가능하게 만든 증명서가 환경성적표지(EPD, 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입니다. 건물 단위로 자재·운영·해체를 모두 합산한 것이 전과정 탄소(whole-life carbon)입니다.
가치 함수의 관점에서 내재탄소는 세 가지 경로로 자산에 작용합니다. 첫째는 규제 리스크의 내재화입니다. 내재탄소에 상한을 두는 제도가 도입되면, 탄소집약적 자재로 지은 건물은 인허가 자체가 막히거나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둘째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 위험입니다. 오늘은 합법인 건물도 전과정 탄소 기준이 강화되면 시장에서 디스카운트되거나 그린금융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저탄소 프리미엄입니다. 저탄소 콘크리트·목조(Mass Timber)·재활용 자재로 내재탄소를 낮춘 건물은 ESG 공시와 녹색금융, 글로벌 임차인의 선호를 흡수합니다. 내재탄소를 '눈에 보이지 않는 매몰비용'으로만 보는 투자자에게는 사라진 숫자이지만, 자산 변수로 읽는 투자자에게는 '탄소 알파'의 원천입니다.
3. 글로벌 동향 — 프랑스 RE2020·런던 WLCA·네덜란드 MPG
제도적 프레임워크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유럽은 내재탄소를 '측정'을 넘어 '규제'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앞서 있습니다. 프랑스의 RE2020은 2022년부터 신축 주거에 적용된 환경규정으로, 건물의 운영에너지 탄소(Ic énergie)뿐 아니라 자재·시공의 내재탄소(Ic construction)에 직접 상한을 두는 세계 최초의 본격 규제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신축 건물 온실가스의 최대 90%가 건설·해체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인식 아래, 내재탄소 상한을 2025·2028·2031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강화합니다. 2025년 단계에서 단독주택 Ic construction 상한은 ㎡당 640에서 530kgCO2e로, 공동주택은 740에서 650으로 낮아졌습니다(L2, 보도·Agora). 자재 선택이 곧 인허가 적격성을 가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같은 흐름은 도시와 국가 단위로 확산됩니다. 영국 런던플랜의 정책 SI2(2021)는 시장(Mayor)에게 회부되는 대규모 개발에 대해 전과정탄소평가(WLCA)를 의무화해, 사업자가 설계 단계에서 전과정 탄소를 산정하고 저감 노력을 입증하도록 했습니다(L2, 보도·GLA). 네덜란드는 MPG(Milieuprestatie Gebouwen, 건물 환경성능)라는 지표로 신축 건물의 환경부하에 법적 상한을 두고 있으며, EU 차원에서는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 개정을 통해 전과정 탄소(전 생애 온실가스) 산정·공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로드맵이 추진되고 있습니다(L2, 보도). 한쪽은 내재탄소에 숫자로 된 한도를 매겨 시장을 움직이고, 다른 쪽은 평가·공개를 의무화해 자본의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공통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건물의 가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는가'만이 아니라 '얼마나 적은 탄소로 지어졌는가'로도 평가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4. 국내 현황 — G-SEED 전과정평가·ZEB 의무화·내재탄소 빈자리
국내 데이터를 살펴보면, 한국은 '운영탄소 규제는 빠르게, 내재탄소 규제는 아직'이라는 비대칭의 단계에 있습니다. 첫째, 운영에너지 트랙입니다. 한국은 2017년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제를 도입했고, 공공에 이어 민간으로 의무화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2026년 12월부터 연면적 1,000㎡ 이상 민간 건축물은 인허가를 위해 ZEB 5등급 수준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L2, 보도). 다만 이 의무화 일정은 그동안 수차례 조정된 바 있어 시행 시점과 적용 범위는 확인이 필요합니다(L3, 확인필요). 정부는 신축 공공건물의 제로에너지화를 통해 ZEB 누적 건수를 2022년 약 2,950건에서 2030년 약 4만 7천 건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L2, 보도).
둘째, 전과정·내재탄소 트랙입니다. 녹색건축인증(G-SEED)은 2002년 이후 건축물의 입지·자재·시공·유지관리·폐기에 이르는 전 생애를 평가하는 제도로, 전과정평가(LCA) 항목을 통해 지구온난화·자원고갈·오존층파괴 등을 내구연수 기준으로 산정합니다(L2). 국내에도 S-LCA 같은 건물 전과정평가 도구가 ISO 표준에 맞춰 개발돼 있습니다(L2). 그러나 현재 G-SEED의 LCA는 가점·평가 항목 성격이 강하고, 프랑스 RE2020처럼 '내재탄소 ㎡당 몇 kg 이하'라는 강제 상한으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즉 한국은 운영에너지(ZEB)는 규제로 묶었지만, 자재·시공의 내재탄소를 '인허가 적격성을 가르는 한도'로 다루는 표준 도구는 시장에 빈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부지에 어떤 자재로 지을 때 전과정 탄소가 미래 규제 한도를 넘는지를 사전에 가려내는 정량 도구가 비어 있는 것입니다.
| 구분 | 글로벌(프랑스·런던·네덜란드) | 국내(한국) |
|---|---|---|
| 내재탄소 | RE2020 ㎡당 상한 강제(2025·28·31 강화) | G-SEED LCA 평가항목·강제 상한 부재 |
| 전과정평가 | 런던 WLCA 의무·네덜란드 MPG 법적 상한 | S-LCA 도구 보유·임의 적용 중심 |
| 운영에너지 | EPBD 성능기준·전 생애 공개 로드맵 | ZEB 인증 의무화 확대(민간 1,000㎡↑) |
| 자재·EPD | EPD 기반 자재 탄소 비교·조달 연계 | EPD·저탄소 자재 인증 확산 초기 |
| 자산 영향 | 탄소집약 건물=좌초위험 vs 저탄소 프리미엄 | 내재탄소 좌초위험 자동 스코어링 빈자리 |
5. 데이터·지표 — 내재탄소를 '자산 적격 점수'로 번역하기
본질적으로 내재탄소 판단은 자재 종류·구조형식·연면적·용도에 흩어져 있는 미시 데이터이지만, 자산 의사결정은 '어떤 건물이 미래 전과정 탄소 규제를 통과할 저탄소 적격 자산이고, 어떤 건물이 탄소집약 구조로 좌초위험인가'라는 우선순위를 요구합니다. 둘을 잇는 방법은 '구조형식별 내재탄소 원단위 × 연면적 × 운영에너지 등급 × 저탄소 자재·EPD 적용'을 결합해 건물별 '전과정 탄소·내재탄소 적격 점수'를 산정하는 것입니다. 국토교통부 건축HUB의 건축물대장·건물에너지정보 오픈 API, 자재의 환경성적표지(EPD) 데이터, G-SEED·ZEB 인증 정보를 결합하면, 특정 건물이 '저탄소 적격 자산'인지 '미래 규제 좌초위험 자산'인지를 정량적으로 가려낼 수 있습니다. 핵심 역량은 '구조·자재 → 내재탄소 원단위 → 운영등급 → 인증 적합성'으로 모으는 번역 능력입니다.
6. 투자 전략 및 결론 — 내재탄소를 '탄소 알파'로
20년간의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지금 점검해야 할 액션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신축·리모델링 자산을 '운영에너지 등급'만이 아니라 '자재·구조의 내재탄소'로 다시 보는 것입니다. 저탄소 콘크리트, 목조 구조, 재활용 자재의 채택 여부가 곧 미래 규제 적격성을 결정합니다. 둘째, 전과정 탄소가 낮은 구조형식과 저탄소 자재를 선제적으로 선택해 향후 강화될 규제 한도에 미리 대비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RE2020의 단계적 강화와 EU EPBD의 전 생애 공개 로드맵은 한국의 제도 방향을 예고하는 선행지표입니다. 셋째, 건축HUB 건물에너지정보 API·EPD·G-SEED·ZEB 인증 데이터를 결합해 '건물 단위 전과정 탄소 적격성'을 스코어링하는 프롭테크 도구를 갖추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내재탄소 관리는 '되돌릴 수 없는 탄소 선불을 자산 의사결정의 변수로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프랑스는 자재의 탄소에 ㎡당 한도를 매기고, 런던은 전과정탄소평가를 인허가의 조건으로 삼으며, 네덜란드는 환경성능에 법적 상한을 둡니다. 한국은 ZEB 의무화로 운영탄소를 빠르게 묶고 있으나, 내재탄소를 '어느 자산이 미래 규제를 통과하는가'의 우선순위로 묶는 실행 도구가 비어 있습니다. 건축HUB·EPD·인증 데이터를 결합해 건물 단위로 전과정 탄소와 좌초위험을 채점하는 'K-WLC(Whole-Life Carbon Index, 건물 전과정탄소·내재탄소 지수)'는, 자산의 저탄소 프리미엄과 좌초위험을 사전에 스코어링하는 프롭테크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향후 10년, 건물은 '얼마나 적게 쓰는가'를 넘어 '얼마나 적은 탄소로 지어졌는가'로도 평가될 것입니다. 내재탄소를 보이지 않는 매몰비용으로만 읽는 투자자는 좌초자산의 디스카운트를 떠안고, 탄소 알파로 먼저 읽는 투자자가 이 전환의 프리미엄을 흡수할 것입니다.
① 신축·리모델링 자산을 '운영에너지 등급'만이 아니라 '자재·구조의 내재탄소(저탄소 콘크리트·목조·재활용 자재)'로 재평가 ② 프랑스 RE2020 단계적 강화·EU EPBD 전 생애 공개 로드맵을 선행지표로 삼아 전과정 탄소가 낮은 구조형식을 선제 선택 ③ 건축HUB 건물에너지정보 API + EPD(환경성적표지) + G-SEED 전과정평가 + ZEB 인증을 결합한 K-WLC Index로 '건물 단위 전과정 탄소 적격성·좌초위험'을 스코어링. 핵심 메시지: "건물의 탄소는 짓는 순간 절반이 정해진다 — 내재탄소를 매몰비용이 아니라 '탄소 알파'로 읽어라."
참고문헌·데이터 출처
Agora Energiewende (2023~). Reducing embodied carbon in construction materials: RE2020 in France — 신축 GHG 최대 90% 건설·해체 단계, Ic construction 상한 2025년 단독 530·공동 650kgCO2e/㎡, 2025·2028·2031 단계 강화(L2, 보도). https://www.agora-energiewende.org/international/success-stories/reducing-embodied-carbon-in-construction-materials-re2020-in-france-1
Greater London Authority (2022). London Plan Guidance — Whole Life-Cycle Carbon Assessments(정책 SI2) — 시장 회부 개발 WLCA 의무, 내재 배출 신축 전과정 탄소의 약 40~70%(L2, 보도). https://www.london.gov.uk/programmes-strategies/planning/implementing-london-plan/london-plan-guidance/whole-life-cycle-carbon-assessments-guidance
One Click LCA / RICS. Whole Life Carbon Assessment Guide — 프랑스 RE2020·네덜란드 MPG 등 내재탄소·전과정 탄소 규제 비교(L2, 보도). https://oneclicklca.com/en-gb/resources/articles/whole-life-carbon-assessment-wlca-guide-lca-epds-regulations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제로에너지건축물 통합인증시스템. 민간 ZEB 의무화 — 2026년 12월 연면적 1,000㎡ 이상 민간건축물 ZEB 5등급, 신축 공공 제로에너지화로 누적 2,950건(2022)→약 4.7만건(2030) 목표(L2, 보도).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47439 · https://zeb.energy.or.kr/
녹색건축인증(G-SEED) / 한국녹색건축연구소. 녹색건축인증 전과정평가(LCA) — 입지·자재·시공·유지관리·폐기 전 생애 평가, 지구온난화·자원고갈·오존층파괴 산정, 내재탄소 저감 과제(L2). https://www.gseed.or.kr/ · http://www.kgbri.co.kr/page/LCA1
국토교통부 건축HUB(건축데이터 민간개방 시스템). 건축물대장·건물에너지정보 오픈 API — 건물 단위 전과정 탄소·내재탄소 스코어링 데이터 인프라(L2). https://hub.go.kr/
※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나 수익 보장이 아닙니다. 시장 수치·정책은 발행일(2026.06.27) 기준이며 기관·기준에 따라 상이할 수 있고 시행 과정에서 변동될 수 있으므로(특히 ZEB 민간 의무화 시점·범위는 추가 확인 필요), 실제 의사결정 시 원문과 최신 자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