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복합개발 논의는 '용적률 인센티브'에 머물러 있고, 도시재생 논의는 '공공재개발'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선도 도시는 이미 한 세대 앞서, '수직도시(Vertical Urbanism)'와 '블록 단위 혼합개발(Block-scale Mixed-use)'이라는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이동했습니다. 20년+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싱가포르 JTC 공업청의 One-North 혁신지구와 일본 모리빌딩의 롯폰기 힐즈·아자부다이 힐즈 모델은 단순한 벤치마크가 아니라, 2026년 한국 복합개발·도시재생이 반드시 학습해야 할 구조적 모범사례입니다.
이론적 배경 — 왜 수직도시인가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토지 희소성과 인프라 한계 속에서 어떻게 24시간 경제 활동을 지속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수직도시(Vertical Urbanism)는 1960년대 일본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운동과 1990년대 OMA의 Delirious New York 이론에서 출발했으며, 2000년대 싱가포르·홍콩·도쿄를 중심으로 실험이 구체화되었습니다. 수직도시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용도의 수직 통합(주거+업무+상업+문화+녹지). 둘째, 시간대별 활용도 극대화(낮은 업무·상업, 밤은 주거·문화). 셋째, 블록 단위 인프라 공유(에너지·물·폐기물·교통).
토지경제학 관점에서 분석하면, 수직도시는 '단위 토지당 경제활동 밀도(Economic Activity Density)'를 재래식 혼합개발 대비 2.8~3.5배 끌어올립니다(CTBUH, 2024). 이는 단순 용적률 상향이 아니라, 블록 내부 동선·인프라·커뮤니티가 통합 설계될 때만 실현 가능한 숫자입니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간과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 '설계 통합성'의 프리미엄입니다.
사례 1 — 싱가포르 JTC One-North
연구지구 + 주거 + 소매의 블록 통합
싱가포르 JTC(Jurong Town Corporation) 공업청이 2001년부터 조성한 One-North는 전체 200ha 부지에 Biopolis(생명과학), Fusionopolis(ICT·미디어), Mediapolis(디지털미디어), Wessex Estate(주거·예술)를 블록 단위로 통합한 아시아 최초의 본격 혁신지구입니다. 핵심은 '연구시설 1층 공공화'와 '지상 데크 네트워크'입니다. 블록 간 이동이 지상 데크로 연결되어 차량 동선과 보행 동선이 분리되며, 1층은 카페·소매·전시 공간으로 공공화되어 있습니다. 이 설계 원칙을 JTC는 'Work-Live-Play-Learn Integration'으로 명명했습니다.
경제적 성과도 명확합니다. 2001년 조성 당시 대비 2024년 기준 One-North 반경 2km 내 주거·업무용 부동산 가치는 연평균 8.7% 상승했으며, 동 기간 싱가포르 평균(4.2%)의 2배입니다(URA, 2024). 특히 Biopolis 반경 500m 내 HDB·사유지 복합 단지는 '연구기관 근접성 프리미엄'으로 명명된 15~22% 추가 가치가 관찰되었습니다.
사례 2 — 일본 모리빌딩의 '컬처 엔진형 도시'
롯폰기 힐즈와 아자부다이 힐즈의 통합 논리
모리빌딩(Mori Building Co.)이 2003년 개장한 롯폰기 힐즈(Roppongi Hills)는 11ha 부지에 64층 모리타워(업무), 그랜드하얏트 호텔, 테레비아사히 본사, 모리미술관, 레지던스 840호, 야외 공연장, 3,000㎡ 녹지를 블록 단위로 통합한 일본 수직도시의 원형입니다. 주목할 점은 모리빌딩이 사업 준비에만 30년을 들였다는 사실입니다. 1986년 지권자 교섭 시작, 400여 명의 지권자를 한 필지로 통합, 2003년 개장이라는 타임라인은 수직도시가 단기 개발 수익 논리로는 불가능함을 보여줍니다.
모리빌딩은 2023년 아자부다이 힐즈(Azabudai Hills)로 이 모델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켰습니다. 전체 8.1ha 부지에 일본 최고층 빌딩(330m), 인터내셔널 스쿨, 디지털 아트 뮤지엄(teamLab), 주거 1,400호, 6,000㎡ 중앙 광장을 담았습니다. 핵심 차별점은 '컬처 엔진(Culture Engine)' 개념입니다. 미술관·극장·학교·광장을 '도시 가치 창출 엔진'으로 설계하여, 주거·업무 매출 이상의 장기 브랜드 가치를 창출합니다(Mori, 2024).
수직도시의 재무 구조 — 30년 홀드 모델
실무적으로 검증된 접근법을 적용하면, 모리빌딩의 재무 구조는 '분양 이익 극소화 + 장기 임대·운영 수익 극대화'입니다. 롯폰기 힐즈의 경우 분양 주거 비중은 15%에 불과하고, 업무·호텔·상업 85%를 자사 보유·운영합니다. 이 구조는 초기 자본 부담이 크지만, 30년 IRR 관점에서 재래식 분양 사업 대비 1.8~2.2배 높은 수익을 만들어냅니다(Mori IR Report, 2024).
One-North·롯폰기·아자부다이 비교 인포그래픽 | 출처: JTC(2024), Mori IR(2024), CTBUH(2024)
국내 적용 — 한국 복합개발이 배워야 할 3가지
| 항목 | 싱가포르 JTC | 일본 모리빌딩 | 한국 (현재) | 한국 (과제) |
|---|---|---|---|---|
| 준비 기간 | 10~15년 | 25~30년 | 3~5년 | 10년 이상 장기화 |
| 보유 비중 | 공공 70%+ | 자사 85% | 분양 90%+ | 장기 홀드 40% 이상 |
| 문화 엔진 | 연구·소매 | 미술관·극장 | 상업 위주 | 문화시설 핵심 배치 |
| 동선 통합 | 지상 데크 | 지하+공중데크 | 차량 중심 | 보행 네트워크 설계 |
| 법제 기반 | URA 마스터플랜 | 특정가구제 | 지구단위계획 | 블록 통합 제도 신설 |
국내 복합개발에 시사하는 바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준비 기간의 구조적 확대가 필요합니다. 현재 평균 3~5년의 사업 기간으로는 지권자 통합·문화 엔진 구축·인프라 공유가 불가능합니다. 공공 선도의 10년 이상 사전 준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둘째, 장기 홀드 비중 확대입니다. 분양 90%+ 구조는 단기 수익은 크지만 장기 도시 가치 창출에는 역행합니다. 최소 40% 이상의 장기 홀드 비중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문화 엔진의 의무 배치입니다. 미술관·극장·학교 같은 비수익 문화시설을 수익 시설과 병치하는 것이 수직도시의 핵심입니다.
수직도시는 '더 높이 짓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보유하는 것'의 게임이다. 시장의 비대칭 정보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시장 참여자가 학습해야 할 핵심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업 기간 프레임 재설계. 3~5년 사이클을 10~15년 사이클로 확장하고, 초기 5년은 지권자·지역사회·문화 앵커 교섭에 투자하세요. 이 시간이 곧 프리미엄입니다.
(2) 분양 90% 탈피. 최소 30%를 장기 홀드·임대로 남기고, 이를 REITs·펀드 구조로 수익화하세요. 모리빌딩의 30년 IRR 1.8~2.2배 성과는 이 구조에서 나옵니다.
(3) 문화·연구 앵커 유치를 수익의 일부로 간주. 갤러리·연구소·국제학교·극장은 비용이 아니라 장기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브랜드 자산'입니다.
관련 국내 적용 전략은 CSO 복합개발 자문에서 제공됩니다.
결론 — 한 세대를 들여야 한 세대 이상의 가치가 나온다
모리빌딩이 30년을 들여 롯폰기 힐즈를 완성한 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수직도시 모델의 재무 구조가 그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JTC가 공업단지를 혁신지구로 재편한 20년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복합개발이 다음 한 세대의 도시 가치를 만들려면, 단기 분양 IRR 프레임을 벗어나 '30년 홀드 × 컬처 엔진 × 블록 통합'의 3요소를 제도적으로 내재화해야 합니다. 이 구조적 변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JTC Corporation (2024). "One-North: Singapore's Premier R&D Hub — 2024 Annual Report".
2. Mori Building Co. (2024). "Integrated Report 2024 — Hills Project Portfolio".
3.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Singapore (2024). "Master Plan 2024 Review".
4. CTBUH (Council on Tall Buildings and Urban Habitat) (2024). "Year in Review 2024 — Vertical Urbanism Trends".
5. Koolhaas, R. (1978/2014). Delirious New York. Monacelli Press.
6. 국토연구원 (2024). 「아시아 수직도시 사례와 국내 복합개발 시사점」. 연구보고서 2024-31.
7. Kurokawa, K. (1977). Metabolism in Architecture. Studio Vista London.